남들은 명절이 힘들다 하지만,
저같은 경우는 저희시댁이 제사가 일년에 수차례입니다
늘그렇듯,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 하나하나에 여자들의 손길이 깃들어 있지만,
제사가 시작되면 투명인간이 되고맙니다....
그저 뒤에서 입을 닫고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지요 .
예전엔 제사하는 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곤 했어요 .
누구에게 절을 하는지, 또 조상이 진짜 제사상을 받으러 오는지...
그동안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고맙다고 생각할는지,
저 조상은 나랑 무슨 상관인지, 내 마음은 이렇다는 것을 아는지등등...
궁금함과 억울함이 뒤섞였던 생각들이지요 .
지금은 별생각이 없이 . 그저 제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금 전세계에 한국 같은 제사와 차례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은 없다고하네요
.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을 비롯해 제사라는 제도가
시작된 중국조차도 제사 문화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은 의미있는 문화이지만,
한국에선 며느리들의 노동으로 이 문화가 유지되는것같아요 .
며느리로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조상들인데...
사실 이런제도에 대해 이성적으로 따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죽은 사람에게 억울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에게 더 서운한 느낌이듭니다
. 수십년간 내가 해준 밥을 먹은 시집 식구들은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
그들이 와서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고 가면, 어질러진 집을 치우면서
‘내가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 늘 마찬가지입니다... 첫 명절부터 이 마음은 늘 그대로입니다.
처음에 결혼해서 제사와 명절을 지낼때, 당시 임신 6개월째였지만, 힘들어하면 엄살 부린다는 타박만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
하루 종일 쭈구려서 제사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지요 . 그 와중에 시집 식구들의 빨래와 집 청소도 여전히 제몫이었습니다 . 남편은 손님을 맞아 술을 마신 뒤 곯아떨어졌고,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돌아보지 않았어요 .
슬픈 기색도 쉽게 나타내지 못하고 자정을 넘어 세수할 때마다 펑펑 울었습니다 . 눈물과 물이 섞여 들키지 않게 울 수 있는 유일한 때였으니깐요. 그렇게 울고서 고개를 들어보니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 그 보름달이 왜 그렇게 친정어머니의 얼굴이랑 비슷한지, 가슴이 미어져 또 펑펑 울었습니다.
제사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있습니다 . 시아버지의 할아버지, 즉 남편의 증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니깐요 . 겨울이면 김장을 하는 배추가 180포기나 됩니다
그래서 늘 며느리인 저는 힘들답니다 물론 우리 시어머니도 너무 힘드시구요...
그런데 남자들은 겨우하는일이 , 차례나 제사 다치르면 또 술상봐주고, 술마시고
또 명절때는 손님들오면 오는족족 술상에 둘러앉아 술마시고 부어라 마셔라 그렇게 하루종일 보내잖아요
이런일때문에 참 많이도 서운하고 남편에게 열이 받은적도 많았답니다
또 술마시고 운전도 못하는터라, 술깨고 하다보면
명절날 친정집에 가는건 너무나 더디고 힘든일이구요
울남편은 딸많은 집의 외동으로 자라서 더욱더 고집도 세고
오냐오냐 그렇게 떠받들어주던 버릇이 있어서 무척이나 권위적이예요 (저희 시아버지께서 가부장적이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것같아요
남편의 자리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따스한 마음으로 아내와 공감할수있는 그런 경험치의 자리인것같아요...
결혼 초기에는 오히려 무척이나 권위적이고, 그랬는데...
울남편이 딸바보라서
울애도 이다음에 나중에 커서 고생하면 참 속상할것같다라고 그냥 속엣말을 하니깐...
제사 많이 안지내는 집에 보내면 된다라고..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공감은 하더라구요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조금 제눈치도 봐가면서 (남편으로서 나이가 드니, 아내눈치도 슬슬보면서
뭐 도울거 없냐는둥, (사실 별도움도 못되지만요 말이라두 그렇게 한답니다 ) 또 집에오면
팔다리도 주물러 주면서 그냥 시늉이라두 내주니깐 기분은 좋더라구요
굳이 남여의 구별이나, 아내와 남편의 역할로서 구분이 아니더라도 , 서로의 공감대의 폭을 넓힌다면 서서히 ..
이런 명절의 악순환은 끊어지지않을까 생각들어요